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카베오 전쟁 (문단 편집) === [[유다 마카베오]]의 대활약 === 그러나 기원전 166년, 마타디아가 전사하고 반란군은 그의 셋째 아들인 [[유다 마카베오|유다]]가 이끌게 된다. 그는 마카베오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했는데, 마카베오라는 이름은 유다가 전투를 시작할 때 늘 외쳤던 '''미 크모카 벨림 야훼!'''(어느 신이 당신과 같겠습니까 야훼여: 출애굽기 15장 11절)에서 각 단어의 앞단어를 따와서 만들어졌다. --로다주?-- "망치"라는 별명답게 유다 마카베오는 뛰어난 군사적 재능으로 전쟁을 주도했다. 마카베오 군대는 팔레스타인 각 도시들을 공격하여 헬레니즘파 유대인들을 색출하여 살해했다. 이는 마카베오 전쟁이 헬레니즘파 유대인들과 셀레우코스 왕조에게 맞서는 내전과 독립운동의 성격을 모두 가지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이에 격분한 헬레니즘파 유대인들은 이들에 맞서서 시리아의 군대장관 리시아스에게 협력하여 마카비 군대를 토벌하려 하였으나 유다 마카비는 벧호론, 엠마오, 벧주르 등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이들을 연전연파하며 기세를 올렸다.[* 시리아인들은 코끼리 등에 나무탑을 세우고 1,000명의 무장한 병사들이 코끼리를 둘러싸고 전투에 나갔다. BC 163년 유다의 동생 엘르아잘은 코끼리를 칼로 찌른 후 쓰러지는 코끼리에 깔려 죽었다.] 결국 기원전 164년, 마카베오 군대는 예루살렘을 점령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은 대신전에 세워져있던 제우스 상을 파괴하고 대신전을 정화했으며 유대교의 전통 의례를 다시 부활시켰다. 이때 야훼를 위하여 켜는 성스러운 촛대의 성유가 하루치 밖에 남아있지 않아서 곤란한 상황이 되었는데 성유를 전례에 따라 만들려면 8일이 소요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남은 하루치의 성유가 '''8일 동안 타오르는''' 기적이 일어났고 이 기적으로부터 유대교의 최대 절기인 '''[[하누카]]'''(수전절, 修殿節)이 유래되었다.[* 하누카는 기슬래월 25일, 양력으로는 '''12월 25일'''에 지켜진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